그나무 2012. 6. 8. 18:51

오늘 문득

어린 시절 뒤뜰 엄마의 장독대가 떠올라

그리움의 낙서를 해 볼양이다.

고만 고만한 항아리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봄이면 물청소 후

말려둔 쑥에 불을 지펴 독 안까지 연기로 소독을 하시곤 했다.

엄마의 감칠맛 나는 장맛에 동네 아낙들이 자주 된장 구걸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주 예전엔, 그러니까 내가 어린이 이전까지는 자잘한 자갈돌들이

장독대를 장식했었다, 몇 년 후 엄마의 소중한 장독대는

아버지의 배려로 시멘트가 곱게 발라진 반듯한 모양으로 거듭났다.

장독대 옆으로 봄이면 내 얼굴보다 더 큰 목단꽃송이들이

빨갛게 또는 눈부신 핑크로 뒤뜰을 장식했다.

그러고도  남은 짜두리땅엔 호박 , 고추, 파, 부추, 가지, 오이, 돌나물

그리고 잔잔한 이름 모를 꽃들까지 이 모든 것 들은 우리들의

간식거리에 바쁜 엄마의 손재주 감이었다.

이렇게 행복하고 아리땁게만 기억되던 장독대는

어느 날부턴가 반짝반짝한 윤기를 잃기 시작했다.

네모 반듯했던 장독대 시멘트 장식도 어느새 모퉁이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장독대도, 툇마루 색도 조금씩 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프면서 반짝반짝했던 빛들이 사라지고 있었던 게다.

그때는 몰랐었다, 해마다 툇마루에 가을엔 콩기름을 짜서 기름을 입혀

무진 걸레질로 진갈색의 반짝반짝한 윤기를 만들어 냈다는 걸...

툇마루 색이 희뿌연 색으로 변하고, 장독대 네 귀퉁이가

모두 무너져 내리면서 엄마의 몸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성인이 다 된 후에도 난 부엌살림을 모르고 살았다, 철이 없었던 난,

그냥 차려진 밥상만 받을 줄 알았지, 어느 날 걱정이 넘친 엄만

내게 장독 살림을 가르치실 요량으로 장 만들 재료와

고추장 만들 재료를 준비하시고 나를 불러들이셨다.

하나하나 지시에 따라 그해 된장, 고추장을 만든 기억은 있지만

그 후로 난 엄마의 간곡한 가르침을 내려받지는 못했다.

집안 살림보다는 집 밖 일에 소질이 있는 내게는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 후로 난 엄마의 장독대처럼 그렇게 아리따운 장독대를 본 적이 없다.

지금의 내 나이에 엄마는 일을 놓고 자리보존하기 시작했었다.

난 지금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같이 철이 없는데...